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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듯 세계여행

[바티칸&로마]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에서 시작한 로마시내 작은 성당투어 본문

서쪽 마을 이야기(Europe)/바티칸(Vatican)

[바티칸&로마]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에서 시작한 로마시내 작은 성당투어

moreworld™ 2011.03.04 10:10

<천사의 성>

바티칸에서 쿠폴라까지 모두 보고 나오느라 4시 베드로 광장에서의 약속은 일방적으로 밀리게 된 셈(1시간 30분이나..)이다. 멀리까지 와서 못보고 돌아가는 것이 있으면 안된다고 기다릴테니 다 보고 나오라는 말이 고맙긴 했지만 죄송한 마음도 완전히 싹~ 가시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은 마음이고, 몸은 쿠폴라로 가는 줄에 서 있으니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인 것 같다. 어쨌든 3일만에 다시 만난 그 분은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베드로 광장에 대한 설명을 조금 들은 후 바티칸을 벗어나면서 부터는 아이가 아빠를 따르듯 두말없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다.

바티칸에서 나와 살짝만 움직이면 약간은 다른 분위기를 띠는 원형의 건물을 볼 수 있다. 바로 천사의 성이다. 어떻게 보면 천사의 성에서 부터 바티칸이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을 듯 하다(비록 나는 거꾸로 찾아오긴 했지만). 보기로는 테베레 강 위를 건너는 다리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멋있는 성일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무덤이다. 무덤을 보면 권력의 정도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본 무덤 중 최강자이다. 서기 130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지은 영묘다. 지금까지 듣고 본 것들을 종합해보면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정치보다는 건축에 더 관심있었나 보다. 티볼리에 있는 그의 별장(가려고, 가려고 몇 번을 조정하다가 버스 시간때문에 가지 못했던 그 곳)도 어마어마하고 멋지게 지었다던데 판테온도, 이곳 천사의 성도 건축물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규모도 대단하지만 과거엔 사람의 영역으로 묘지가 들어올 수 없어 로마시대에 묘지는 대부분 성곽 밖으로 내몰렸다(아피아 가도 주변의 카타콤베가 이를 보여줌)고 하던데 역시 왕가(王家)이니 이런 곳에 묘지를 만들 수 있구나.

그런데 이곳이 묘지로 사용된건 그리 오래지 않았다고 한다. 로마의 국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요새가 되기도 하고, 군사용 건물로, 때로는 감옥으로, 교황의 피신처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건물들이야 시대에 따라 용도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오랜 역사를 거듭하면서 위용을 갖춘 곳에서 치를 떠는 곳으로 변화될 수 밖에 없었던 그 역사가 어쩌면 인간의 인생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에고.. 건물 하나보면서 넘 말이 많네. 여튼... 이곳이 천사의 성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과거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흑사병 퇴치를 위한 기도를 하던 중 미카엘 천사가 이곳 꼭대기에 나타나 칼을 칼집에 넣고 있는 환상을 보게 된 이후 꼭대기에 '천사상'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은 천사의 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배경이기도 하였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미카엘 천사를 보면 너무 반갑다.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인 그가 대부분은 용맹하고도 도전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어서 든든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무사히 여행도 할 수 있고 그런가 보다. ^^

<바티칸에서 천사의 성으로 이동통로>

왼쪽 사진에 붉은 색으로 표시했는데 잘 안보이네. 여튼 교황만이 다닐 수 있는 저 길로 피신해다녔다고 한다.

▶ 미카엘 천사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 곳: http://moreworld.tistory.com/167

<천사의 다리>

천사의 성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천사의 다리는 천사의 성 못지 않게 아름답다.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만들어졌을 당시의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그 보다 양 옆으로 늘어선 조각상들이 베르니니가 조각한 조각상들이기에 사람들은 더욱 즐겁게 이 곳을 오갈 수 있는 것 같다. 상설로 펼쳐지는 상상할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 길거리 전시장이다.

<나보나 광장 모로의 분수>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 로마에서 생각나는 분수를 말해보라 하면 '트레비 분수(사실 제대로 본 분수가 이것밖에 없다-제대로 봤다는 말도 맞지 않는 것 같지만...)'를 말하겠지만 로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곳 나보다 광장에 있는 분수를 꼽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순간의 강렬함에 끌리는 여행자와 오랫동안 지속되는 그윽한 향기에 끌리는 생활자의 차이가 아닐까.
나보나 광장에는 총 3개의 분수가 있다. 양쪽의 작은 분수대 사이에 커다란 오벨리스크를 품고 있는 조각 분수대가 있다. 이 분수대에 얽힌 일화도 꽤 재밌다.

<나보나 광장>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 바로 성당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광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나와서 보니 이탈리아의 여느 광장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대개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의 광장이었는데 100m달리기 경기장도 아니고 길쭉하게 긴 광장이다. 알고보니 1세기에 만든 도미티아누스 경기장 터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 길이가 장장 300m에 가까운 경기장이다. 경기장의 트랙이었던 곳이 지금의 광장이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17~18세기에는 이곳에 물을 채워서 시민들이 물놀이도 할 수 있도록 했었단다. 사실 지금의 모습으로는 그 때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기야 콜로세움도 물을 채워 해전놀이를 했었다 하니...

<베르니니가 제작한 4대강 분수>

3개의 분수 중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4대강 분수이다. 우리나라 4대강이 떠오르지만 스케일은 그 보다 훨씬 크다. 바로 유럽의 다뉴브(도나우)강, 아시아의 갠지스강, 아프리카의 나일강, 아메리카의 플라타강을 상징하는 4개의 석상이 만들어지면서 4대강 분수가 되었다.
앞에서 말한 분수에 얽힌 사연은 바로 이 분수를 만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와 그의 라이벌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에 관한 이야기다. 연령대도 비슷하고, 예술적 기량도 뛰어나 당대 유명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던 두 사람이 나보나 광장에서 그들 나름의 치열한 전쟁을 치뤘다. 일단 그들의 적대적 관계는 나보나 광장 이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종탑을 만든 베르니니가 종탑에 생긴 균열로 교황의 신임을 잃자 그 사이를 삐집고 들어간 것이 보로미니였다. 물론 그 전부터 악감정이 있었기에 맹렬차게 베르니니를 비난했겠지. 그들의 1차전은 보로미니의 승리였다. 그 후 그들은 나보나 광장에서 다시 만났다. 경기장이 없어진 이곳은 오랫동안 시장으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시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따라서 굉장히 지저분해졌고, 설상가상으로 분수대를 말들이 모여 물을 마시는 곳으로 사용하다보니 악취까지 나는 아주 비호감의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변화를 추구한 것이 이노켄티우스 10세 교황이다. 교황은 이곳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였고, 그 중 하나가 바로 4대강 분수였다. 나보나 광장의 중심에 있는 4대강 분수는 베르니니가, 나보나 광장을 내려다 보고 있는 성 아녜스 성당은 보로미니가 만든 것이지만 4대강 분수의 실제 아이디어는 보로미니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심혈을 기울여 공사를 계획했고 총감독도 보로미니가 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실제 결과는 베르니니가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이에 보로미니는 광분했다고 한다. 이렇게해서 제2라운드는 베르니니의 승리가 되었다. 그렇게 울분은 삼키는 보로미니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는데 그것이 바로 나보나 광장에 있는 성 아녜스 성당의 건축이었다. 원래는 카를로 라이날디가 건축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맘에 들지 않았던 교황은 다시 보로미니를 둘러들이고 상당히 만족스러운 성당을 얻어냈다. 보로미니는 2라운드에서의 참패를 잊지 않았지만 적대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다. 아녜스 성당을 만드는데 4대강 분수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교황에 충분히 만족했겠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아녜스 성당이고 이를 본 사람들은 3번째 라운드에서 보로미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주고받는 전쟁 아닌 전쟁이 보는 이들도 재미났나보다. 그들의 잠잠해진 전쟁이 지루했는지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4대강 분수의 조각 중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나일강은 보르미니의 아녜스 성당이 보기 싫어서이며, 플라타강을 의미하는조각상이 아녜스 성당을 향해 손을 들고 있는 이유는 성당이 무너질까 두려워서라고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가져다 붙였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성당 앞에 있는 아녜스 성녀의 동상이 손을 들고 있는 이유가 성당이 안전하다는 의미에서 보로미니가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분수가 먼저 만들어지고 성당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떠도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들의 라이벌 관계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안타깝게도 보로미니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고, 우울적인 기질도 많아 자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보로미니 보다 13년을 더 산 베르니니는 더 많은 예술적 건축물들을 만들어내면서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마지막 승자는 베르니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들은 죽어서까지 원치않는 전쟁을 치른 셈이 되었다.

<아녜스 성당(Sant' Agnese in Agone)의 전면>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아녜스 성당은 보로미니와 베르니니의 전쟁을 기억에서 지울 수 있을만큼 아름답다. 로마시대때 있었던 기독교 박해 당시 13살의 소녀 아녜스가 순교당한 곳이 이곳이라고 전해진다. 알몸으로 만인들 앞에 끌려나와 순교를 당하게 되자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면서 그녀의 몸 전체를 감싸주었다고 한다. 이 성당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감정이입 때문일 수도 있다. 늘 혼자 좋은 곳을 다녀 엄마께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엄마의 세례명인 아녜스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니 맘이 더 짠해져서 였을 것이다. 이쁘게 찍어 엄마에게 보여줘야지 했는데 겨우 이 사진 하나 남았다. 대신에 성당 안에는 엄마를 위한 기도의 불씨가 아직 타오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켜놓고 온 초도 이미 꺼졌겠지만...
 
이 때부터 저녁식사를 하기 전까지 판테온을 제외하고도 6개의 성당을 더 다녀왔다. 여행책자에는 나오지 않지만 가톨릭 신자라면 빼놓을 수 없는 성당들만 추렸다면서 정신없이 나를 끌고 다니셨다. 혼자왔다면 절대 찾아가지 못했을 곳들이라 더 없이 기뻤지만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은 기억이 될텐데'라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물론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배가 꼬르륵 거려고, 다리가 아파도 군말없이 따라다녔다. 성당과 관련된 이야기, 성인 이야기를 한장 한장 타이핑쳐서 그곳에 갈 때마다 내게 던져주는 세심함이란... 요거 그대로 들고 담번에 다시 와야겠다.

Chiesa Nuova: 필립보 네리 성인과 관련된 성당
Chiesa Sant' Agostino(성 아우구스티노 성당):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가 있었던 곳, 라파엘로의 그림이 있었던 곳
Chiesa Santa Maria Sopra Minerva(성모 마리아 성당): 카타니라 성녀, 안젤리코 수사, 미켈란젤로의 예수님상,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곳
Chiesa del Gesu(예수성당): 예수회의 이냐시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님의 유해가 있는 성당
Chiesa di Xll Apostoli(열두사도 성당): 필립보,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있던 성당
Chiesa di Sant'Ignazio(성 이냐시오 성당)




위 에서 말한 성당들 중 몇 군대의 모습이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그분이 말했다. '그렇게 찍기만 하면 나중에 어디가 어딘지 절대 알 수 없다. 그때 모른다고 나한테 물어도 나도 모른다'고... 난 그냥 웃기만 하면서 찍어댔는데 정말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ㅎㅎ 알수 있도록 몇 가지 표시를 해 두었는데 소실된 사진이 생기게 되면서 나의 생각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그냥 보기만 해야겠다.

<12사도 성당>

전면엔 열두사도의 성상이 장식되어 있다. 이 즈음되니 성당도 문을 닫기 시작한다. 계획한 성당은 더 있는데 다 보지 못해 나 보다 더 아쉬워 하신다. 난 괜찮은데... ㅎㅎ

<시저가 암살된 장소로 알려진 곳>

예전에 한번 가본 맛있는 집이 있다고 거기 가자 하고선 골목만 몇 바퀴 뺑뺑~ 돌다가 기억이 안난단다. 그래서 그냥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8시가 넘어 저녁식사를... 혼자 다니다 보니 거의 대부분을 피자 조각이나 파니니만 먹다보니 이런 식사에 너무 감사하게 된다.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지르면서 먹으니 굶고 다녔냐고 묻는다. 뭐 거의 다를바 없었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진부터 찍던데 그냥 먹는 걸 보니 급하긴 급했나 보구나'라고 말씀하시니 예의상 찍어야 할 듯 하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꺼내들고 초점은 확인도 안하고 찍어버리고는 먹는데 모든 감각을 쏟아부었다. ㅎㅎ

<전식>

 

<라자냐>

<스파게티>

버섯향이 무지하게 강한 스파게티... 이탈리아스럽게 스파게티가 제일 맛났다. 이렇게 왕창 먹고 다시 피오리 광장으로 가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그래, 내가 원하던 여행은 이런 것이었어'라고 외치면서... 사실 혼자 다니다보니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싶어도, 와인을 한잔 하고 싶어도 혼자 앉아 먹기가 좀 그래서 망설이다 포기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럴 때 정말 동행자가 그립다. 덕분에 원 풀었다.

많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외딴 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어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절감했다. 뭐라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쓴 웃음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전해졌다. 마냥 외국에서의 삶은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어린 생각에 반성하면서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사실 외국에 있는 몇 몇의 지인들에게 여름은 본의 아니게 바빠지는 계절이다. 잦아진 해외여행으로 인해 찾아오는 손님이 해마다 늘어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그냥 여기서 가이드나 하면서 먹고 살까?'라고 하기도 한다. 난 단 한번이지만 그 단 한번의 사람이 엄청나게 찾아들텐데 문득 객이 떠나고 혼자 남은 그들을 생각해보니 이것도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든다.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채워지는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움푹 패어지는 그들을 마음을 너무 모른척하지 않았나 싶다. 이전엔 몰랐는데 일본에 동생을 두고 돌아오는 길에서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혼자 버스 안에서 얼마나 훌쩍였는지... 괜히 그 때의 기억이 나서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맥주 한잔하고 맛난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민박집까지 데려다 주고는 여행 잘 마무리하고 집에 잘 가라고 하신다. 내일이면 또 볼 수 있을 사람인 것처럼... 아쉬워서 어쩌냐고 그러니 새삼 왜그러냐고 타박을 주면서 뒤도 안돌아보고 간다. 아마 그 분은 어쩌면 이런 생활이 너무나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이 익숙함이 찾아오기까지의 힘이 드는 것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었겠지.


다시 찾은 아이스크림집. 12시가 넘어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 그 만큼 맛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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