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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듯 세계여행

내가 원하는 여행을 만나다. 본문

Precious Memories/Travel Essay

내가 원하는 여행을 만나다.

moreworld™ 2010.03.12 00:08

여행전문 잡지 트레비(Travie) 여행 에세이 공모전에 응모한 글입니다.
버금상을 탔어요. 부상으로 유레일 패스를...
올여름 유럽으로 향할 수 있을까요?
그러길 바래보며...




내가 원하는 여행은 하루를 있더라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있게 색다른 분위기의 골목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이다. 화려한 색채로 장식하고 관광객을 맞고,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쉴새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여기저기 도장찍듯 다니는 여행도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여행은 아니다. 박물관에 걸려있는 그림 하나를 보지 못하더라도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내겐 더 큰 기쁨이었다. 빨래줄에 걸려있는 빨래가 어떤 색깔인지, 창가에 얹어놓은 꽃은 무슨 꽃인지, 그들의 마당은 어떻게 장식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게 훨씬더 나를 흥미롭게 한다. 훔쳐보기의 짜릿함인가?

그런데 내게도 그런 기회가 생겼다. 굳이 훔쳐보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그들 삶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계획에도 없던 일정을 넣어버렸다. '여행이란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공인된 기회라 했었지? 그래, 나도 한번 해보는 거야.'


모짜르트의 고장 짤츠부르크를 만나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실수로 기억되는 경향이 많다. 유럽이라는 거대한 세계로 향하면서 특별한 준비도 없이 떠났으니 그 어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으리라. 긴장된 마음을 풀 새도 없이 다른 곳으로 정신없이 이동해야 했고,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선 먹는 것을 포기하자라는 생각으로 다녔으니 허기짐은 또 말할 필요가 있을까. 조금씩 집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고, 돌아가 편안히 다리 뻗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즈음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믿는 구석! 그래, 생각해보니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 특별한 준비도 없이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의 씨름끝에 공중전화를 통해 그녀와의 통화가 성공했고, 그러고는 당장 짤츠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미리 확인해둔 도착시간을 그녀에게 알린채.

비엔나에서 짤츠부르크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동화 속의 나라였다. 아기자기한 집들과 넓은 초원, 파란 하늘을 빨아당길 것만 같은 호수, 거기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모두가 영화에서, 그림에서 보던 풍경들이다. 믿는 구석을 찾아가는 내 감정이 이입된 것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는 동화속의 나라로 남았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역에 도착했고, 기차가 멈추기도 전에 플랫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지구 반대편 기차역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니... 기쁨과 반가움에 벅차 눈물이 핑~ 돈다. 그래도 우는 모습을 보여선 안되지. 웃으며 그녀와 재회를 했다.

구세주를 만나다.



내 모습이 그녀도 불쌍해보였을까.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이 구시가지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다. 조그만 동굴을 뼈대삼아 만든 레스토랑은 이미 만원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 이곳 사람들이 자주 찾는단다. 특히 맛있는 것이 소시지와 크림을 곁들인 고기라는데 너무 정신없이 먹는 바람에 음식 이름도 기억을 못한다. 시원한 맥주까지 챙겨주는 그녀의 센스에 또 한번 감동한다.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사람도 눈에 들어 온다. 몇 년 만에 만난 후배와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니...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오지만 어찌하랴.
내가 만난 그녀는 오르간 공부를 하기 위해 짤츠부르크로 유학 온 후배이다. 한국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는 돌연 오르간을 하겠다며 짤츠부르크로 떠났다. 어려운 상황에서 떠나는 유학이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난 그녀가 꼭 성공해서 돌아올 것이라 믿었고, 꼭 그랬으면 하는 바램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물론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기에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배가 부르니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소개해 준 몇 일 동안의 하숙집을 찾아 갔다. 그녀의 집에는 이미 다른 친구들이 와 있어서 내가 신세를 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 절친의 하숙집을 내게 소개해줬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다.




함께 공부하고 있는 친구의 하숙집이라 했다. 그 친구는 방학을 맞아 자신의 집으로 떠났는데 내가 방문한 시기와 맞아 떨어져 여기에 머무는 동안 그 친구의 방을 쓰기로 한 것이다. 1층은 노부부가 사용하고, 2층은 그 친구가 하숙하는 방이란다. 밖에서 보는 집의 모습도 너무나 아름답지만 실내는 인테리어 책에서 접할 수 있었던 다락방 형태의 방으로 넓으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또 밤에는 창을 통해 보이는 별과 달이 색다른 낭만을 느끼게 했다. 남학생이라 들었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보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어쨌든 몇 일간이지만 우리집처럼 생각할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날아갈 듯이 기분이 업된다. 



(마리아 아주머니는 낮엔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실 때가 많다)

1층에 살고 계시는 마리아 아주머니 부부는 퇴직을 하시고 정원을 가꾸며 여유롭게 살아가고 계신다. 아들이 하나 있지만 이곳의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20살이 되던 해에 독립했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부모와 함께 살기보다는 스스로 개척해나가겠단 생각으로 독립을 했고, 마리아 아주머니 부부도 기분좋게 허락했다고 하신다. 아주머니는 내가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식사를 챙겨주셨다. 새벽에 나와도, 저녁 늦게 들어와도 꼬박꼬박 챙겨주신다. 폐가 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꼭 이국땅에 엄마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은 너무 좋다. 
식사를 할 때는 항상 곁을 떠나지 않으시며 더 필요한건 없는지, 맛은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직접 만드신 쨈을 내어주셔서 맛있다고 말씀드리니 정원에서 키운 열매로 만든 쨈이라고 곧장 마당으로 가시더니 그 열매까지 따다 주신다. 또 하루는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앨범을 들고 오신다. 그러면서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 아저씨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신단다. 특히 아시아쪽의 여행을. 젊었을 때부터 1년의 몇 번은 그렇게 여행을 가신단다. 물론 내가 갔을 때에도 네팔로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집안 곳곳이 아저씨의 여행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브레드 피트를 닮은 아저씨가 설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핸섬한 아저씨와 함께 사시니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하니 박장대소를 하신다. 


(아주머니의 정성으로 피어 있는 꽃들)


장인의 손길을 만나다.



짤츠부르크는 모짜르트의 도시로 유명하다. 하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게트라이데 골목의 간판 컬렉션이다. 구시가지의 중앙에는 모짜르트의 생가가 있고, 그 좌우로 좁은 골목길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특징인 철제간판들이 그득하다. 어느하나 같은 모양이 없이 자신의 매력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이 골목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기도 한단다. 간판들은 아직까지도 예전 대장장이들이 만들었던 방식을 통해 작업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에 대해 대장장이들은 엄청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몇 대를 거쳐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간판들이 더욱 빛나는 것 같다.




만남의 끝은 헤어짐이라.

만남의 끝은 언제나 이별이라 하지만 첫 경험이기에 더욱 잊을 수 없고, 발걸음이 쉬이 떼지지 않는다. 전날 혹시나해서 준비해간 한국 기념품을 아주머니에게 드린 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떠날 것이니 보지 못할 것이라 말씀드렸다.
다음날, 혹시나 아주머니가 깨실까봐 조용조용히 짐을 옮기고 까치발을 해가며 내려오는데 우리 소리를 들으셨나?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이렇게 일찍 가냐고, 아침은 먹고 가야한다며 금방 차려줄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라 하신다. 괜찮다고 사양하니, 극구 아침을 먹고 가야한다면서 빠르게 손을 움직이시는데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아침식사를 함께하고 나니 헤어짐의 아련함이 더해지는 것 같다. 결국 우리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야 말았다. 이별을 인정하기 싫었는지 난 꼭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아주머니는 기다리겠다는 인사를 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짤츠부르크에 있는 후배를 통해 간간히 마리아 아주머니 소식을 듣는다. 아주머니도 우리가 궁금하신지 안부를 물으신단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많은 기억들 중 가장 편안한 기억으로 마리아 아주머니를 기억한다. 그리고 꼭 우리의 약속처럼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아주머니의 호탕한 웃음과 과장된 몸짓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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